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분쟁의 시작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두 나라는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들이었지만 종교가 달랐고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의 영유권을 놓고 옛날부터 다툼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한 두 나라의 갈등은 소련 붕괴 후 독립을 하면서 1993년 전쟁을 하기 시작하였고, 지금까지도 세계의 분쟁 지역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코카서스 지역의 두 나라입니다. 산악지대인 코카서스 지역은 유럽 동남부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수백 년 동안 기독교 또는 이슬람 세력들이 이 지역의 통치권을 가지고 대립해 왔습니다. 오스만 제국 밑에서 순응하며 살아오던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오스만 튀르크의 쇠퇴와 함께 이 지역에 러시아가 들어오면서부터입니다. 러시아는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니아의 민족주의를 부추겼고 그런 아르메니아의 의지를 꺾기 위해 오스만튀르크는 아르메니아인들을 집단 학살을 합니다. 그러나 이 학살은 아르메니아인들을 더욱 뭉치게 합니다. 오스만 튀르크가 사라지게 되자 이슬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과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에 흡수되는데, 그 과정에서 두 민족이 모여 살던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은 아세르바이잔에 속하게 됩니다. 아르메니아인이 더 많아 실질적으로 아르메니아의 통제를 받던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이 아제르바이잔 속으로 들어가자 아르메니아는 불만을 가지게 되고, 소련의 지배하에서도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켰으며,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은 수십 년간 끈질기게 아르메니아로의 통치권 이양을 요구해 왔습니다.
두 나라의 만행
1980년대 후반 소련이 붕괴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아제르바이잔은 이러한 분리주의파 운동을 억압하려 했고 아르메니아는 이를 지원하는 상황으로 번졌습니다. 이러한 두 나라를 통제하던 소련 체제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서는 폭력 사태가 갈수록 심해져 갔습니다. 1991년 12월 25일 마침내 소련이 완전히 무너지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결과적으로 독립하면서 두 민족은 본격적으로 전쟁에 돌입합니다. 전쟁의 양상은 아르메니아군이 아제르바이잔군을 압도하면서 진행됩니다. 1993년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물론이고 아제르바이잔의 영역까지 점령해 전쟁에서 완전한 우위를 차지합니다. 양국의 전쟁은 1994년까지 계속되다가 그해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의 중재로 비슈케크 협약을 맺고 휴전을 하면서 일단락됩니다. 비슈케크 협약으로 전쟁은 마무리되었으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소련의 지배 아래서 불안하게나마 유지되던 아르메니아인과 아제르바이잔인의 공존은 완전히 끝났고 수백 년을 이어오던 양국의 공동체는 모두 생활 터전을 잃고 모두 자기 나라로 추방되었습니다. 더군다나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전쟁 기간 동안 발생한 민간인 학살은 양국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양측은 아제르바이잔에서 자행된 숨가이트 학살과 호잘리를 점령한 아르메니아군이 저지른 호잘리 학살 등 서로 간에 잔인한 인종 청소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양쪽이 저지른 학살과 인종 청소로 인해 수만 명이 숨졌고 100만 명에 가까운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전쟁의 승자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을 차지한 아르메니아는 점령지에 아르차흐 공화국이라는 이름의 위성국을 만들어 실질적으로 지배합니다.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 외에도 자국의 관할지역까지 빼앗기고 1993년 쿠데타까지 발생하며 패배의 후유증 속에서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상황은 후에 완전히 반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동안 소련에 이끌려 다니던 상황에서 독립한 아세르바이잔은 카스피해 연안에 있는 방대한 에너지 매장지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곧 아제르바이잔의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소련의 통제하에 개발이 제한되던 에너지 매장지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거대한 사업이 시작되었고 대형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면서 아제르바이잔은 돈방석에 앉게 됩니다. 반면에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의 결과로 카스피해로 가는 길이 끊어지면서 완전히 고립되기 시작합니다. 아제르바이잔의 형제국가인 터키가 아르메니아와 국교를 단절하면서 흑해로의 연결도 막히게 되고, 아제르바이잔의 송유관이 조지아를 통과하는 데 따른 경제적 이득 때문에 같은 기독교 국가인 조지아도 아르메니아를 외면합니다. 2008년, 2010년, 2011년에 벌어졌던 국경 지대의 충돌은 결국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공황 속에서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에서의 전면전으로 다시 확대됩니다. 전쟁의 결과는 아르메니아와 아르차흐 공화국의 참패로 끝나고 1993년 전쟁에서 차지했던 땅을 모두 돌려주게 됩니다. 32년을 이어온 양국 간의 분쟁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아르메니아가 1992년과 달리 2020년에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1994년 휴전 이후 26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아제르바이잔이 오일 머니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양국의 국력이 큰 폭으로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힘이 없으면 결국 주변의 다른 나라들로부터 외면받는다는 것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분쟁은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